종영된 ‘다큐 3일’에서 특별히 편성한 방송을 보았다. 10년 전, 여행을 하던 두 명의 청춘과 촬영진 셋이 얼결에 10년 후 같은 시간, 안동역에서 다시 보자는 약속을 한 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과연 그들은 만났을까. 10년 후 그날, 촬영 시간이 종료될 즈음 카메라가 꺼지자 안동역에 한 여성이 다가왔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잘 살았냐고, 잘 살아줘서 기쁘다는 안부가 서로 오고 갔다. 그러나 다큐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은 청춘을 관통하며 나눈 수많은 약속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학 때, 한 미술 평론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한 달간의 교생 실습을 마치고 헤어지던 날, 아쉬움에 우는 여고생들에게 말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행운의 날, 1977년 7월 7일 7시에,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이루어졌을까. 강의를 듣던 많은 학생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7시 정각에 어른이 된 여학생들이 하나둘씩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했던 여학생 대부분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약속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내 약속도 아닌, 타인의 10년 전 약속이 그토록 마음을 흔든 이유는 무엇일까. 2025년 8월 15일, 오전 7시 48분, 안동역, 만남의 기적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른 아침부터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나눈 약속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지켜지지 않은 약속일지라도 그 약속 덕분에 우리는 더 간절히 살았고, 더 애틋하게 사랑했으며, 더 깊이 그리워했다는 걸 말이다.
약속의 진정한 의미는 만남에 있는 게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 모든 시간들에 있는지 모른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 실망하고 좌절했던 매 시간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약속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진짜 마법이 아닐까. 안동역에 선 저 많은 사람이 증명하듯,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