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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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best@tistory.com 2026. 5.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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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애인과 헤어진 후배가 그의 집을 마구 부수는 상상을 하다가 같이 키우는 고양이가 불쌍해 그 녀석만 빼오는 계획을 세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상상으로 뭔들 못해!”라는 말을 던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적 복수에 대한 상상이 펼쳐졌다. 이어서 한 남성이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힌 형을 떠올리면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다.

우리는 “내가 미쳤지, 걱정도 팔자, 배부른 소리!”라며 자신의 마음을 쉽게 재단한다. 그러나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감정은 마음속에 찾아오는 손님 같아서 불쑥 왔다가, 할 말만 하고 떠난다. 감정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다. 감정이 상할 때 쓰는 ‘속상하다’는 말은 우리 몸 안의 장기들이 실제로 상하는 것을 비유한 표현이다. 감정을 계속 참으면 결국 탈이 난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자신의 감정에만 냉정한 판사가 된다. 분노하면 ‘성격 더러운 놈’, 슬퍼하면 ‘약한 놈’, 두려워하면 ‘비겁한 놈’이라고 판결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실제 행동하는 게 전혀 다른 일인데 말이다. 중요한 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감정은 내면의 날씨와 비슷하다. 비가 온다고 해서 나쁜 날씨라고 하지 않듯, 분노나 두려움을 나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비가 씨앗을 키우듯, 분노는 부당함을 바꾸는 힘이 되고, 두려움은 조심성을 길러준다.

엄마도 아이가 미울 수 있고, 아이도 엄마가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런 감정을 품는다고 나쁜 엄마나 나쁜 자식이 되는 건 아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읽다가 각성한 순간이 있다. 소설 속 ‘안녕’이 굿바이(goodbye)가 아니라, 봉주르(bonjour)였다는 충격 때문이다. 결국 ‘안녕’은 슬픔을 떠나보내겠다는 결별이 아니라 어서 오라는 환대의 인사였다. 나도 내 안의 모든 감정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고, 잘 머물다가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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