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가지 직업을 체험하는 영상을 보다가 멈칫했다. 출판사 편집자를 따라다니던 진행자가 길에서 만난 초등학생에게 “서점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이는 서점에서 책을 사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뭔가 거대한 것들이 빙하처럼 가라앉고 있다고 느꼈다.
한때 나는 수십 개의 전화번호를 기억했다. 지금은 스마트폰 때문에 서너 개도 못 외운다. 내비게이션이 길 찾는 능력을 지운 것처럼 책을 요약 정리해 주는 인공지능은 독서와 사색의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다. 기술은 빠르고 매끄럽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미국 역사학자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사라진 우연성을 말하며 “파스퇴르는 우연한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말했지만 과잉 설계의 시대에는 우연한 기회가 누구에게도 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우연에 맡겨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반영한 콘텐츠만 보여준다. 라디오나 매장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끌려 낯선 음악을 사볼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검색과 구매 데이터 기반의 추천 시스템은 사고와 소비 취향을 강화시킨다. 굳어진 생각은 나와 다른 사람을 점차 배제시킨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시대의 아이러니다.
AI로 숙제를 하는 요즘,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가 힘들어졌다. 오답에서 배우는 게 때로 정답보다 값진 배움인데 말이다. 구글맵이 없던 시절, 길을 잃어 뜻밖의 사람을 만나고 우연히 맛집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런 것들이다. ‘뜻밖에 우연히’라는 말은 모든 인간적인 순간에 등장하는 단어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실패한 실험을 정리하다가 페니실린을 발견했듯 위대한 발견은 종종 계획되지 않은 순간에 찾아왔다. 그러나 많은 것이 알고리즘으로 최적화된 지금, 우리는 그런 아름다운 실수를 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때로는 잘못 들어선 길이 새로운 지도가 되기도 한다.